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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호모 루덱서스다

'더 잘 놀기위해' 나를 빚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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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min read
나는 호모 루덱서스다
T

Software engineer for web tech. Interested in sustainable growth as software engineer.

지난글에서 저는 '선택의 자유'를 향해 나를 단련하겠다고 했습니다. 지식을 굴비 엮듯 쌓아두던 습관을 버리고, 멘탈 모델을 쌓아가는 방향으로 삶을 재설계하겠다고요. 그리고 실제로 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평소의 저라면 마다할 일들이 즐거워지고 있었습니다. 매일 운동하는 게 귀찮지 않고 블로그 글을 쓰는 게 의무감이 아니고 퇴근 후 Obsidian을 열어 노트를 정리하는 게 피곤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루 중 그 시간이 기다려질 때가 있엇습니다. 처음에는 이게 일시적인 동기 상승이려니 했는데, 몇 달이 지나도 비슷한 감각이 유지됐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하다가 어느 대화에서 하나의 이름을 만났습니다.

호모 루덱서스(Homo Ludexers).


1. 이름의 정체

라틴어를 뜯어보면 이렇습니다. Homo는 인간, Ludere는 유희(놀다), Exercens는 수련(단련하다). 합치면 '수련을 통해 유희를 전취하는 인간'쯤 됩니다.

단순히 놀기 좋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더 잘 놀기 위해 스스로를 갈고 닦는 사람. 압도적인 실력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시스템의 제약에서 벗어나 진짜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이들에게 수련은 놀이의 반대가 아닙니다. 수련 자체가 놀이의 일부입니다. 땀 흘리는 과정, 잘 안 되던 것이 어느 순간 되는 순간, 쌓인 게 연결되는 느낌 — 이게 루덱서스에게는 게임에서 레벨업하는 것만큼 짜릿한 경험입니다.


2. 내 삶에서 발견한 루덱서스

처음 이 개념을 들었을 때 '나를 설명하는 단어구나' 싶었습니다. 그동안 왜 이 방식으로 살고 있는지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는데, 이름이 생기니 선명해졌습니다.

첫 번째: 유희의 주권을 전취한다

9년 차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일하면서 가장 재밌었던 순간들을 돌이켜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주어진 스펙을 그대로 구현했을 때가 아니라, 시스템의 틈을 발견했을 때였습니다. "이렇게 하면 더 빠르지 않나?", "이 구조는 왜 이렇게 설계됐을까?"를 파고들어 예상치 못한 해법을 던지는 순간. 그게 재미였습니다.

루덱서스는 장치가 제공하는 기본값(Default)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수련을 통해 획득한 실력으로 게임의 규칙을 흔드는 플레이어입니다. 저는 그 감각이 좋아서 개발을 계속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수련을 유희로 설계한다

TedPool 시스템을 처음 만든 건 '나쁜 습관을 끊겠다'는 목적이었습니다. 웹소설 금지, 유튜브 제한, 주 7일 운동. 강제와 금지의 언어였죠.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프레임이 바뀌었습니다. 이걸 더 높은 수준의 유희를 위한 준비 운동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운동을 하면 집중력이 올라가고, 집중력이 올라가면 코드가 더 잘 읽히고, 코드가 잘 읽히면 더 재밌는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지루한 반복이 아니라, 다음 판을 더 잘 즐기기 위한 준비입니다.

수련이 목적지가 아니라 더 좋은 유희를 위한 마중물이라는 걸 알게 되면 고역이 게임이 됩니다.

세 번째: 남들과 다른 수(手)를 만든다

Obsidian으로 노트를 정리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하지만 그 노트를 RAGFlow와 연결하고, Neo4j로 관계 그래프를 만들고, 온톨로지를 직접 설계해서 지식이 자동으로 분류되게 만드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단순히 남들과 다른 도구를 쓰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시스템이 꿈꾸지 못한 방식으로 쓰는 것, 그게 루덱서스적 창조입니다. 같은 Obsidian을 쓰더라도 자신만의 온톨로지로 재구성할 때 지식의 가치가 달라집니다. 그 과정 자체가 저에게는 가장 즐거운 놀이입니다.


3. 이름을 갖는다는 것

이름을 갖는다는 건 그 방향으로 살겠다는 선언입니다.

'자유를 향해 나를 단련한다'는 말은 맞지만 좀 무겁습니다. 반면 '루덱서스로 산다'는 말에는 가벼움이 있습니다. 즐기면서 강해진다는 느낌이 있죠. 그 차이가 생각보다 크게 작용합니다. 무거운 언어는 지치게 하고, 가벼운 언어는 지속하게 합니다.

수련이 고역이 되면 지속할 수 없습니다. 수련이 유희가 되면 멈추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호모 루덱서스입니다.

더 잘 놀기 위해 오늘도 나를 빚습니다.